나는 서울에 산다.
우리 아버지도 서울에 사셨고 우리 할아버지도 서울에 사셨다.
이쯤에서 짐작되겠지만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생활 반경이 서울을 벗어났던 적은 군대에 있을 때가 전부였던 것 같다.
나에게 서울은 고향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런 서울에 살면서 거의 매일 봤던 풍경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건설 현장이다.
정말로 거의 매일 무언가가 지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내가 어릴적 이모댁이 잠실이었다.
사촌 형과 노는 걸 좋아해서 이모댁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놀이는 흙더미 위에 올라갔다 내려오던 것이었다. 그 당시 잠실은 흙만 가득한 허허벌판이었다. 듬성듬성 집을 짓기도 하고 간혹 크레인 같은 것이 있어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었다.
초등학교때는 주말마다 아버지와 함께 우리집 뒷산을 거쳐 약수터에 가는 것이 교회나 성당에 가는 것 같은 일이었다. 그때 약수터를 가는 길에 거쳐가던 작은 산등성이 있었는데 그 당시 그곳은 아이들의 아지트였다. 또 애완동물이 죽으면 묻어주던 추억의 장소였다.
그런데 그 산등성이 중학교 때 없어졌다.
산등성을 팬스로 가로막고 굴삭기로 파내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약수터에 가려면 다른 길을 거쳐 가야 했고 동네 친구들은 산에서 놀지 않게 되었다. 가끔 강아지 생각에 찾던 꽃이 활짝 핀 무덤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중에 없어진 산등성에는 두동짜리 아파트가 생겼다.
어릴 때 택시를 타면 좋아했던 코스가 있었는데 바로 지하철 공사 현장이었다.
지하철 공사 현장에는 아스팔트 대신 철판이 깔려 있었는데 그 위를 지나갈 때면 자동차의 소리가 달라졌다. 또 우우웅 소리와 함께 묘한 진동이 느껴져서 좋았다. 더불어 안전망 사이로 신기한 기계들을 감상하는 것도 빼놀 수 없는 매력이었다.
초등학교(그 당시엔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한옥이나 단독주택을 부수고 빌라를 짓는 것을 수 없이 보았다. 그런 모습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계속 되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를 다니면서 오랜만에 초등학교가 있던 곳을 가면 건물들의 높이가 달라져 생소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개천이 하나 있었는데 물은 거의 없고 냄새만 나던 곳이 았다. 똥냄새가 나기도 해서 똥천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거기에도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런 후 똥천을 따라 지하철이 뚤리고 산책로가 생겼다. 물론 똥냄새도 없어졌다.
지나가면서 늘 느꼈던 냄새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는 걸 보면서 인간의 능력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에 가고 군대를 가면서도 건설 현장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군대에서 달라진건 내가 직접 삽을 들었다는 것 정도이고 늘 무언가를 짓는 풍경이 계속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짓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군대 가기 전에 명동 근처에서 알바를 했었다. 간혹 배달이나 심부름을 할일이 있어서 청계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을지로를 지나 동대문 시장을 다녔었는데 청계천 고가도로 밑에서 차들과 뒤엉켜 색다른 경험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제대하고 친구를 만나러 명동을 가면 을지로를 거쳐 길게 있었던 그 큰 청계고가도로가 먼지도 나지 않으면서 서서히 분해되는 첨단 공법을 감상하곤 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얼마후 나는 여친과 함께 청계천을 걸어다녔다. 또 얼마 후 딸래미와 함께 이 청계천 끝에 있는 달팽이 껍질 같은 탑 앞에서 가족 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 좀 넓은 대로변은 인도를 줄이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도를 줄이는 부분은 대걔 사람이 많이 모이는 횡단보도 근처 였다. 사람 많이 다니는데 인도를 줄여서 불만이 좀 쌓여가는데 차로 한가운데에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인도를 줄여 생긴 공간은 버스 중앙 차로의 정류장이 되었다.
버스 중앙 차로가 생기니 버스를 타는게 시간 절약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횡단보도 앞에서 타야할 버스를 그저 바라만 보곤 하는 그바보가 되기도 했다.
요즘도 강남, 양재 혹은 홍대 근처 동교동 쪽을 가면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다. 덕분에 지나갈 때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 한편으론 언제 쯤 완성될까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거의 매일 건설 현장을 보면서 살아온 서울에서의 삶.
내가 건설 쪽과 관련된 직업을 갖지 않아도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다.
왜 거의 매일 건설 현장을 보면서 살게 되었을까?
그건 서울이 매일매일 발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매일 발전하는 서울에서 사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간혹 예전의 모습을 추억하고 싶을 때면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하던 강아지의 무덤을 찾을 수 없게 하고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어가던 열정을 사라지게 하고 흙더미에서 뛰어 놀던 동심을 아이들에게 전해 줄 수 없게 되었다.
또 발전의 모습이 사람들의 욕심을 키워가는 것을 느낄 때면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결혼하고 둘이 돈을 벌어도 집 한칸 마련하기 힘든 곳이 서울이다. 그러면서도 나도 한번 큰 돈 벌어보자는 생각에 남에게 뒤쳐지기 싫은 욕심이 생겨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게 하는 곳이 서울이다. 또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넘치는 곳이 서울이다.
앞으로 서울에서 얼마나 더 건설 현장을 보며 살아가게 될까?
아마도 한동안은 계속 보게 될 것 같다.
거의 매일 건설 현장을 보게 되는 서울.
그래도 난 서울이 좋다.
싫어 할 이유가 넘치는 서울이지만 그냥 서울이 좋다.
그래도 크레인 소리 말고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거의 매일 접하는 서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좋아할 점이 많아지는 서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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